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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지정번호 : 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소재지 : 강화군 선행리 371번지(선원 김상용선생의 엣집터로 일러옴)

이 사당은 서기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때 문신선원 김상용선생이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했으나 청군이 침입하여 강화가 함락되자 굴복하지 않고 강화성 남문루상에서 화약궤를 타고 앉아 불을 붙여 순절한 그분의 충의정신을 높이 받들어 김상용선생을 주향으로하고 배향으로는 공조판서 이상길 외 27位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그 이후 신미양요 때 충신 어재연 장군의 형제 2位를 더 모시어 도합 29位의 위패를 매년 음력 10월 중 정일에 제항하고 있다.

서기1641년에 강화 유수 허위가 건립하여 현중사라고 명명하였던 것을 서기 1658년 효종으로부터 충렬사로 사액을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현존건물로는 한식목조 맛배지붕 와가로 이익공 겹처마로 본당14평, 제기고 16평, 관리사, 비각,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철종외가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 8호 당초지정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264번지

이 집은 서기 1853년에 지어진 것으로 철종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았다.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는 [H] 자집 배치였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어져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평면 구성은 전체적으로 옛날 사대부 집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를 일자로 곧장 연결시켜 화장담으로 간략하게 구획한 것이 특이하다.

당시 일반 사대부 집의 웅장한 규모와 다르게 법도에 맞도록 고졸(古拙)하게 지은 건물이다.

철종외가묘역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 7호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산 70-46

철종 외가에서 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 야산 중턱에 원형의 묘역으로 설치되어 있다.

철종 10년(서기1859년)에 강화 유수 조충식이 철종의 외숙부 3인의 묘역을 정화하고 비석을 세워 왕족의 위신을 갖춘다는 뜻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철종은 외가 5대에게 벼슬을 추중케하고 선원면 냉정리 내에 전답 약 10여 정보를 하사하는 등 특전을 베풀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선원사/선원사지

지정번호 : 사적 제259호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692-1번지

선원사는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해서 창건되었다.
조선국 대장도감이라는 임시 국가기관에서 제작된 대장경판을 체계적으로 봉안, 관리함과 아울러 선림의 칼로 몽고군을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선원사가 창건되었던 것이다.

낙성회에서는 진명국사를 맞이하여 법주로 삼았으며, 원오국사 등 국내외 고명한 승려 3,000명이 초청되었다.
초대 주지에 임명된 진명국사는 신화, 신정 스님등 훌륭한 납자 200명을 거느리고 선원사에 와서 1252년까지 6년동안 주석하며 선원사의 기틀을 다졌다.

이처럼 선원사는 조계산 수선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제2대 선찰로 명성이 높았으며, 진명혼원, 원오천영, 원감충지, 환암혼수 등 고려시대를 풍미하던 덕망높은 선승들이 법통을 이어 도량을 수호한 대감이었으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그 위치가 어디인가 의구심을 자아내며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고서에 심증이 가는 선행리 충렬사 부근이라는 일서과 1977년 11월 사적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원면 지산리 692-1번지 일대라는 양설이 평행하고 있으며 1993년 서원스님이 선원면 지산리 692-1번지 인접하여 선원사 복원 불사를 발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진진

지정번호 : 기념물 제42호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연리 435-1, 438-1

이 진은 조선 효종 7년에 축조된 강화도 내 12개 보 중의 하나로서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군관 24명, 사병59명, 진군18명, 도합101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포좌4문, 총좌26개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한다.

군향미112석, 대두6석, 첨향미103석, 보리씨12석, 소두1석, 감장6독,진선8척,군기 및 군용품 약간씩이며 이진에서 기리, 좌강, 용당의 3개 돈대를 관리하였는바 가리산 돈대는 남쪽으로 좌강까지 2410m 좌강돈대는 남쪽으로 오두까지 2,500,구간의 수비를 하였다 한다.
이 구간에서는 모두 선착이 가능한 지역으로 경계를 철통같이 하였다고 한다.

용진성 문루를 참경루라 하였다. 현재 석축은 대부분 파괴되고 석문가운데 홍예 두 문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98.12.15~1999.12월까지 사업비 8억원을 들여 서진산업에서 참경루 복원사업과 성곽 29m를 복원하였다.
또한 홍예 2문 중 좌측 홍예의 높이는 2.57m, 폭 4.15m, 두께 60~61cm이고, 우측 홍예의 높이는 2.14m, 폭 4.80m, 두께 59~60cm의 규모이며, 석재는 화강암이다.

가리산돈대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344번지

용진진에서 관리하던 돈대로서 서기1704년 강화유수 민진원이 개축하였으며, 포(砲) 4문(門)이 설치되어 갑곶 외진으로 활용하던 돈대로서 그 규모는 가로 32m, 세로 40m의 장방형의 돈대이다.






좌강돈대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

용진진에서 관리하던 돈대로서 가리돈대와 용당돈대 사이에 위치한것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바 그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추측컨대 용진진 부근에 폐허화된 돈대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 내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 번지마저도 사유화 되어 지금은 인근 주민들이 석축안의 토지를 경작하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을 사업비 18억중 사유토지 보상과 14억 2천만원으로는 2000.1.3~6.12까지 (주)토형에서 석축 130.7m 보수, 포좌4개소, 계단 3개소를 설치하고 자연석 118.1 쌓기외 용진진과 좌강돈대 성곽연결 38.7m 보수공사를 하였다.

용당돈대

유적번호 : 0323-03-106호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연리 1번지

용진지에서 관리하던 돈대로서 서기 1679년 (조선숙종 5년) 윤이제가 축조하였다고 하며, 바닷가에 접해 있어서 선박을 댈 수 있는 돈대이나 그동안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2001.1.11~12.20일까지 사업비 415,360천원을 투입하여 신일건업에서 성곽 78.04m, 포좌 3개소를 복원 보수하였다.




화도돈대

지정번호 : 지방문화재 자료 제17호
소재지 :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번지

서기 1679년(조선 숙종5년)에 축조된 것으로 광성보에 소속된 돈대로 강화군내 53개 돈대중의 하나이며, 형태는 방형으로 둘레는 92보치첩수 42이다.

옆에는 상동암천 하류인 화도배수갑문이 있는 곳으로 평야지에 우뚝 솟은 구릉위에 수비초소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2003년 10월 4일부터 2004년 4월 13일까지 육군 사관학교 박물관측에서 사업비 8천만원으로 발굴하였고 앞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 돈대 주위로 외성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 돈대는 석벽터를 기분으로 볼때 방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쪽에 새로이 쌓은 이질적인 석축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돈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의 남서쪽에서 화도수문개축비가 있다. 과거에는 이곳을 통하여 큰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